본문 바로가기
JOB&

5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영어강사가 세계 최고 기업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by sajupal 2020. 11. 25.

 

유년시절부터 실패만 해오던 소년

초등학교 와 중학교 시험에서 여러 번 떨어지고 중국의 수능 수학 점수는 120점 만 번에 1점을 기록하며 대학에는 삼수 그리고 취업도 30번이나 실패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세계에 손에 꼽는 기업인 ‘알리바바’를 설립한 ‘마윈’이라는 사람인데요. 

그는 다른 창업자들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 그리 뛰어나지 않은 머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로 유명한데요. 30번의 낙제에도 취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1988년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에 ‘영어 강사’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의 뛰어난 영어실력과 재치 있는 수업으로 우수 교사로 선정될 만큼 인정을 받아온 마윈은 1992년 단돈 50만 원으로 영어 번역회사인 ‘하이보 변역사’를 차리며 창업에 한 발자국 내딛게 되는데요. 당시 중국의 정치인이었던 ‘덩샤오핑’에 의해 중국 시장이 크게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영어와 무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마윈은 이를 알아보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재정에는 적자가 나면서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팔며 적자를 매웠고 1995년 미국으로 간 마윈은 처음 인터넷을 접하게 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는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도전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그마저도 수백억의 자본금을 보유했던 ‘항저우 텔레콤’이 같은 사업을 시작해 1년간의 경쟁 끝에 경쟁을 포기하고 합작회사를 운영하기로 했지만, 항저우 텔레콤 70% 마윈이 30%로 지분 비율에 문제가 생기자 자신의 의지대로 회사를 운영할 수 없었던 마윈은 결국 사퇴를 하게 됩니다. 

 

다시 찾아온 기회 그리고 또 다른 시작

항저우 텔레콤과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마윈은 이를 계기로 중국 내 정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게 되고, 마윈과 그 팀원들은 중국 정부기관이 만든 첫 웹사이트인 ‘온라인 중국 상품 거래 시장’을 제작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중국의 공공기관 특성상 경영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 심하고 모든 성과는 대외 경제무역부 간부들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자 마윈은 중국 정부의 간부들과 갈등을 겪으며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역시 이에 포기하지 않았던 마윈은 정부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전자상거래를 구축하게 됩니다. 결국 이 당시 설립된 회사가 1999년에 설립된 ‘알리바바’라는 회사가 되는데요. 알리바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싶었던 알리바바는 투자자를 계속해서 찾아다녔고 끝내 ‘골드만삭스’와 ‘소프트 뱅크’로부터 300억 가까이의 투자금을 받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200억을 날린 마윈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마윈

하지만 처음부터 성공을 하지 못했던 알리바바는 초기 해외지사들을 세우며 해외시장을 공략해 보려고 했지만, 300억 가까이 되는 투자금 중 200억을 날리게 되고 결국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중국 시장에서는 크게 성공을 하게 되고, 2003년에는 전자상거래 서비스인 ‘타오바오’를 내놓으며 승승장구하게 된 알리바바는 꾸준히 성장하여 시가총액 549조 원, 매출은 63조 원에 다다르는 거대 it 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결국 마윈은 지금 45 5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재벌이 되었고 그의 성공 스토리와 명언들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요. 수많은 역경과 실패 속에 끝까지 포기할 줄 몰랐던 마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