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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

"10년간 184명을 강X" 대한민국 최악의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를 기억 하십니까?

by sajupal 2022. 8. 4.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힘" 이슈킬러 입니다. 

 

범죄 중에서도 살인을 제외하면 가장 악랄하다고 생각되는 범죄가 있는데요. 바로 '성폭행'입니다. 

 

타인에게 단순한 상처가 아닌 몸과 마음에 씻을수 없는 끔찍한 상처를 남겨주는 범죄이죠. 

 

오늘 소개해 드릴 사건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증거가 확보된 범행만 77건, 동일한 수법의 범죄이지만 확인되지 않은 건수만 114건인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폭행 사건입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왜 범인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피해를 줄때까지 잡히지 않았는지.... 

지금부터 한번 사건에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전 '발바리'

1990년대 후반 대전일대에서 원룸촌을 집중적으로 혼자사는 여성을 노린 성범죄가 엄청나게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범인의 체액을 검출하여, 1999년도부터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이를 데이터로 모두 동일범의 소행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KBS 표리부동

당시 이 범인은 대전 내 여러지역에서 활동하며 범행을 저질렀고, 빠른 침입과 도주를 하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발바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고 하네요.

 

악랄한 그의 범행수법

악랄한 범인의 이름은 바로 '이중구'입니다.

 

발바리는 범행수법이 엄청나게 악랄한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출처 : 뉴스1

이중구는 작고 날렵한 체구로 창문을 통해 혼자사는 여자의 집으로 잠입을 하였으며, 자신의 흉기가 아닌 피해자의 집안에 있던 흉기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출처 : 채널A '악마를 보았다 5화'

한 피해여성은 발바리에게 범행을 당한 후 자신의 지인을 불러내라는 명령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여성의 친구를 불러낸 뒤 여성의 친구 또한 범행을 당하게 해서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공범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고 하죠. 

 

심지어는 3명을 불러내 한꺼번에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대전역이 어느 방향이냐', '노숙자다', '고아원 출시니다' 등의 거짓말로 자신이 대전사람이 아닌것 처럼 하는 등. 

 

경찰의 수사 혼선을 복잡하게 했다고 하죠. 

꼬리를 잡힌 범인

그는 수사기간이 10년이 걸릴만큼 범행에 철저했다고 하는데요. 워낙 몸놀림이 날렵할 뿐만 아니라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으려고 피해자를 그 자리에서 샤워하도록 지시할 정도로 치밀했다고 하죠. 

 

때문에 언론도 이중구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건이 접수되고 지지부진 하던 수사의 실마리가 풀린건 그로부터 6년 후인 2005년이라고 하는데요. 

 

2005년 한 성폭행 사건이 발생되었고, 2004년 10월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계장으로 부임한 '유동하 계장'은 오랜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을 관심있게 본 후 1999년의 자료부터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동부서 관할인 중리동에서 침입 강간 사건이 발생.

 

이때 발생되었던 유전자 감식결과가 사건의 범인을 '이중구'로 몰아갔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근처에서 성폭생 사건이 잇다라 발생되자 언론에서는 경찰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게 되었고 경찰들은 이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는데요. 

하지만 이에 이중구를 활동 영역을 전국구로 늘렸고, 경찰은 계속된 수사 끝에 2006년 1월 18일 이중구가 서울에서 대전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경찰에게 들켜 20여명의 형사가 서울로 향한 후 소재를 파악하던 중 이중구가 지인의 아이디를 도용해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는 사시을 파악한 후 1월 19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의 모 PC방에서 급습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중적인 이중구의 민낯

거의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대전을 중심으로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이중구는 196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를 잃고 형제에게 폭행을 당하자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다고 하는데요. 

 

어린나이에 온갖일을 다 해왔고, 20대 초반에 고향으로 돌아와 모아온 돈으로 작은 문구점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내를 만나고 나이가 들어 개인 택시도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개인택시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때 쯤 접고, 직업 없이 살아왔다고 하죠. 

 

당시 이중구는 딱히 가정불화도 없었으며 아내와 20대 초반인 회사원 딸, 대학생 아들까지 있었던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실업자가 된 뒤로는 택시를 팔아 남은 돈과 딸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하는데요. 

경찰관이 수사 도중 이중구에게 '딸을 키우는 아비로서 성폭행을 저지를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라고 묻자

 

그는 '괴롭겠지요'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떨궜다고 하네요. 

이중구는 어떤 판결을 받았나?

어렵사리 잡힌 이중구는 결국 '무기징역'이라는 판결을 받았는데요. 

 

수백명을 성폭행한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는 너무 가벼운 형량이라는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이중구는 끝까지 양심없는 선택을해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는데요. 

 

검거당시 피해자들에게 4천만원 상당의 돈을 갈취했던것으로 판단되었고, 그의 통장에는 1억 4천만원 상당의 현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법정에서는 그에게 피해자들에게 인당 70만원 정도의 합의금과 20년형의 징역을 제안했지만 이중구는 1억 4천만원이 없다면 20년형을 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합의를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현재 16년째 수감을 해오고 있다고 하네요.